믿음을 주는 배우, 하정우의 진정성 있는 연기
2016년에 개봉한 터널은 재난 장르에 인간적인 감성을 절묘하게 녹여낸 작품이다. 김성훈 감독이 연출하고 하정우와 배두나가 주연한 단순한 생존 이야기로 시작해, 점차 관료주의와 언론의 과열, 그리고 인간의 회복력을 고찰하는 층위 깊은 서사로 발전한다. 제 개인적인 시각에서 터널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단순한 스타 캐스팅이나 재난 소재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개인의 고립된 위기를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의 친밀함과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작품은 드물며, 그 균형이 바로 터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하정우가 있다. 그는 터널 붕괴 사고로 매몰된 평범한 자동차 영업사원 이정수 역을 맡았다. 평소 강렬한 존재감으로 유명한 하정우는 이 작품에서 최대한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과장된 감정보다는 무력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감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목소리의 떨림, 지친 눈빛, 외로움 속에서도 간간이 보이는 유머 감각과 흥행 측면에서도 하정우의 캐스팅은 큰 무기였다. 추격자, 황해, 암살 등 연이은 흥행작으로 이미 믿고 보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터널 속에서 펼쳐지는 그의 감정선에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강점이었다. 저 역시 작품을 보면서 ‘저 상황에 내가 놓였다면 저렇게 반응할 것 같아’라고 느낄 만큼 깊이 공감했고, 그 몰입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흥행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지상에서의 감정선, 배두나가 완성한 또 하나의 축
터널 내부의 정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바깥의 세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배두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세현 역을 맡아, 지상에서의 감정적 긴장감을 조용히 쌓아 올린다. 단순히 기다리는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생사와 함께 사회적 시선, 언론의 압박, 국가 시스템의 무력함까지 마주하는 인물로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배두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센스, 괴물 등 국내외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해 온 배우로, 감정의 깊이와 국제적 인지도 모두를 겸비했다. 그녀가 보여준 절제된 감정 표현은 감정 과잉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 같은 감정에 몰입하게 했다. 제 시선에서,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터널 속만큼이나 숨 막히게 진지했고, 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정우가 생존을, 배두나가 기다림을 그려내며 양축 구조가 완성되었고, 이로 인해 재난 스릴러 이상의 서사로 확장될 수 있었다.
상업성과 사회비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서사
터널의 또 하나의 흥행 포인트는 바로 재난영화라는 외형 안에 현실적인 사회 비판을 녹여냈다는 점이다. 비효율적인 구조 시스템, 보여주기식 정치, 감정 소비에 열광하는 언론 등, 작품 속 묘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보는 내내 저는 단순한 긴장감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안타까움, 분노, 좌절 이런 감정이 깊은 몰입을 이끌었고, 인물들에게 더욱 강하게 이입하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사회비판을 담은 서사는 감정적 공감뿐 아니라 지적 자극도 유도한다. 단지 정수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넘어서, 우리 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만들었다. 하정우의 연기력도 화제였지만,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 속 구조 시스템 너무 현실 같다, 정치인들 모습이 너무 진짜 같다 같은 이야기로 떠들었다. 바로 이런 감정적과 사회적 반응이 흥행의 진정한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 시각에서 터널은 재난영화를 어떻게 잘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공간은 좁지만 이야기는 넓고, 긴박하지만 감정은 섬세했다. 단순한 탈출극이 아니라, 육체적 갇힘과 동시에 사회적 갇힘을 함께 그려내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 이상의 감정을 끌어냈다. 하정우는 절제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았고, 배두나는 그 감정을 밖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깊이를 더했다. 흥행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배우 선택, 대중성과 비판 의식의 균형, 장르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의 공존이다. 오늘날처럼 소음이 넘치는 시장에서 터널은 말해준다. 때로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어둠 속에서 외치는 한 사람의 작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