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스며든 연기
처음 최선의 삶을 봤을 때, 흔한 성장이야기라서 기대했던 나에게 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우정 감독이 연출하고 방민아, 한성민, 심달기가 주연한 2021년 작품인 최선의 삶은 소녀 시절의 잔혹하고도 섬세한 풍경을 공감과 정서적 폭력 사이에서 담아낸다. 표면적으로 보면 전형적인 흥행작처럼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시각 효과도, 심장을 뛰게 하는 로맨스도, 대형 제작비도 없다. 하지만 그 조용한 표면 아래에는 진정성과 감정의 깊이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직진하는 강력한 시네마틱 경험이 숨어 있다. 내가 보기엔 최선의 삶은 대중적인 요소가 아닌, 그 진중한 감정의 무게, 점점 커지고 있는 여성 중심 서사에 대한 수요, 그리고 인디 및 평단의 반응을 통해 흥행 가능성을 증명한다. 어떻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눈발로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방민아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깊고 절제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강이 역을 맡은 그녀는 질식할 듯한 청소년기의 현실을 소름 끼칠 만큼 솔직하게 표현한다. 한성민(아람), 심달기(소영)와의 케미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가슴 아플 정도다. 이 세 인물은 단순히 우정에 금이 간 친구들이 아니라, 빈곤과 폭력, 개인적인 트라우마의 무게에 휘청이며 조금씩 무너져가는 소녀들 그 자체다. 흥행 측면에서 볼 때, 이건 꽤 큰 매력 포인트다. 톱스타는 없지만, 그 대신 모든 배우들이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며 감정의 진폭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정서적 진정성은 개봉 이후에도 오래도록 입소문을 타며 생명력을 유지하게 만든다. 특히 또래 여성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나가며, ‘꼭 봐야 할 영화’로 회자되는 힘이 있다.
외면하지 않는 이야기
수많은 청소년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최선의 삶은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다. 이 영화는 10대 시절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도덕의 회색 지대에 놓인 10대들의 선택과 상처를 차갑게 그려낸다. 중심 악역도, 따뜻한 결말도 없다. 오직 압박 속에서 내몰린 선택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망가져가는 관계들, 그리고 “성장”이란 결국 살아남는 일이라는 냉혹한 현실뿐이다. 상업적 관점에선 이토록 직설적인 현실주의가 위험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시각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최선의 삶만의 시장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팬데믹 이후 관객들은 점점 더 진짜 감정, 진짜 인물, 진짜 고통이 담긴 영화에 끌리고 있다. 이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불편함과 함께 머무른다. 그렇기에 영화제 관객, 인디 영화 팬, 비평가들, 그리고 자신만의 진실을 찾고 있는 10대 관객들에게 깊이 파고들 수 있다. 극장에서 대흥행을 하진 못했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충성도 높은 팬층을 만들 수 있는 이유다. 스트리밍, 교육용 상영, 여성 영화 커뮤니티를 통해 꾸준히 회자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 중심 서사의 힘
조용하지만 강력한 매력은 바로 여성 중심의 시선이다. 여성 감독 이우정이 연출하고, 세 명의 복합적이고 결함 있는 인물들이 중심을 이루는 대중적인 호감을 사기 위해 톤을 희석하지 않는다. 로맨스도, 남성 주인공도 없다. 이는 철저하게 여성의 이야기이고, 여성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여성의 시선으로 서술된 작품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오늘날 이런 시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다양성과 성평등을 지향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응답하고 있는 중이다. 최선의 삶은 벌새, 우리들과 같은 작품들과 함께, 여성 청소년기의 감정과 사회적 복합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낸다. 나에게 단순한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여성 서사의 흐름 안에서 중요한 한 줄기라고 느껴진다. 이런 콘텐츠는 당장의 블록버스터 수익을 올리진 못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문화 자산을 축적한다. 배급사, 영화제, 소규모 스트리밍 플랫폼이 이러한 콘텐츠를 찾고 있고, 최선의 삶은 그런 시장의 갈증을 정확히 채워주는 작품이다.
: 정적 속 진실의 힘 최선의 삶은 시끄러운 영화가 아니다. 폭발도 없고, 유명 아이돌도 없으며, 화려한 장면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용히 마음을 부순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것도 하나의 강력한 흥행 동력이다. 내게 이 영화는 전통적인 흥행 기준보다는, 관객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스며드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할 작품이다. 한 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다시 꺼내보게 되는 영화. 새벽에 문득 생각나고, 친구와 오래 이야기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진 못했지만, 애초에 최선의 삶은 그것을 목표로 한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의 성공은 정서적, 문화적, 그리고 영화적 영향력에 있다. 관객들이 진짜 이야기, 진짜 감정을 찾고 있는 이 시대에, 최선의 삶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영화로 남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이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존재는 충분히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