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한 믹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어떤 작품을 마주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고전 호러와 B급 영화풍의 패러디가 섞인 듯한 제목을 보고, 흔한 장르 클리셰에 기대는 작품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매우 영리하고 장르가 뒤섞인 기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고, 그 과감한 이상함이 오히려 큰 재미를 주었다. 신정원 감독이 연출하고, 이정현, 김성오, 서영희가 주연을 맡은 이 2020년작 SF 코미디는 끝나고 나서도 머릿속에 오래 남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제 개인적인 관점에서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발한 설정과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혼잡한 시장 속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실히 구축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제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의 장르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SF이자 호러 패러디이며, 동시에 스크루볼 코미디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톤이 뒤섞이지만, 정작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그 복잡함은 철저히 의도된 것이며, 괴기와 유머를 능숙하게 버무리는 신정원 감독의 장기가 이 작품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보는 내내 마치 장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예측 불가능함이 오히려 재미의 핵심이었다. 외계인 음모론, 죽지 않는 남편, 엉뚱한 탐정들까지 이야기 전개는 마치 황당한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듯했지만, 놀랍게도 각 요소들은 생각보다 잘 맞물려 돌아간다. 저처럼 틀에 박힌 전개에 지친 이런 장르적 실험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물론 전통적인 서사나 안정된 리듬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오히려 독특함을 추구하는 마니아층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스오피스 관점에서도, 이런 참신함은 젊고 감각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이정현의 강렬한 원톱 연기
저에게 더욱 인상 깊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정현의 연기였다. 그녀가 연기한 소희는 남편의 정체를 의심하며 혼란에 빠지는 인물인데, 이정현은 그 복잡한 감정과 혼란스러움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군함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그녀는 이 기묘한 플롯 속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놀라웠던 점은, 작품의 설정이 다소 황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역할을 결코 우습게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장되거나 얄팍한 연기로 흐르지 않고,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감정을 능숙하게 오가며 극에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사람들은 중심을 잃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 강한 여성 캐릭터는 점점 더 큰 흥행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정현의 존재 자체가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만 조금 더 전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기대 이상의 풍자적 깊이
겉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죽지 않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사실 결혼, 남성성, 사회적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날카로운 풍자를 담고 있다. 제 시선에서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단순한 웃음이나 충격만을 노리는 게 아니라, 유쾌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 속 어처구니없는 구조들을 해부한다. 완벽해 보이던 남편이 알고 보니 외계인이고, 죽지도 않는다는 설정은 과장돼 보일 수 있지만, 비유적으로 보면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여성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의심을 사회가 얼마나 쉽게 무시하는지, 그리고 관계 속에서 여성의 직관이 어떻게 조롱당하거나 억눌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남편의 이상한 행동이 매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그 안에 숨은 위협이 가려지는 구조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이런 다층적인 메시지는 모든 관객이 즉각적으로 알아차리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풍자적 서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박스오피스 측면에서도, 단순 코미디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후기나 재관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고, 스트리밍 이후에라도 컬트 영화로 자리 잡을 여지가 충분했다고 본다. 제게 있어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흔히 보기 힘든 유형의 한국 장르였다. 대담하고, 낯설며, 철저히 독창적이다. 박스오피스에서 대기록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많은 안전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다. 장르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성,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풍자적 메시지까지, 진정한 슬리퍼 히트의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었다. 어쩌면 시대를 조금 앞서갔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마케팅이 조금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야말로 흥행은 단순히 익숙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기묘할 정도로 대담한 시도에서 비롯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한다.